고전주의 음악가
모차르트(Wolfgang Amadeus Mozart, 1756~1791)
음악의 신동이라 불리는 모차르트는 음악인으로서 뿐만 아니라 그의 작품으로도 오늘날의 우리에게 너무나 잘 알려져 있습니다. 우리는 피아노를 비롯하여 어떠한 음악을 접하려 해도 반드시 그의 음악을 거치게 됩니다. 그는 왜 그렇게 유명한 것일까요?
모차르트는 매우 어린나이에 성숙하였지만 또한 매우 젊은 나이에 생을 마감하게 됩니다. 고작 35세라는 짧은 생애 동안 정말 놀라울 정도로 수많은 명곡을 만들었습니다.
바흐나 베토벤 등은 곡을 만들 때 언제나 구조에 대한 질서를 지키려고 노력했습니다. 오랜 시간 생각하고 고민하여 썼다가 지우기를 반복하며 또 고민하지만 모차르트는 그와 같지 않았습니다. 이 음악 천재는 무의식 중에서도 구조에 맞춰 곡을 쓰기도 하고, 때로는 그런 질서 따위 없이도 곡을 완성시켰습니다. 한마디로 모차르트는 불규칙성의 대가였습니다. 그는 빠른 속도로 작곡을 이어나가며 언제나 주저하지 않았습니다. 거리낌 없이 열린 마음으로 비상했기에 항상 새로운 생각이 솟구쳤습니다. 때문에 보는 이들에게는 빨라 보였을지 몰라도 그의 입장에서는 항상 여유 있게 악상을 펼칠 수 있었던 것입니다.
우리는 그의 음악에서 생각지도 못하던 아름다운 멜로디에 빠지고, 다양하게 변화하는 재미에 흥미를 느낄 수가 있습니다. 통일과 대조를 이루는 모차르트의 소나타 형식에서도 얼핏보면 형식 없이 무질서하게 보이지만 너무나도 매력적이고, 여유 있는 선율들과 또 반대의 주제는 복잡하지만 마치 속임수처럼 전체적으로 조화를 이룹니다.
볼프강 아마데우스 모차르트는 1756년 오스트리아의 잘츠부르크에서 궁정 관현악단의 악장 레오폴드 모차르트의 아들로 태어났습니다. 그는 어려서부터 음악에 대한 천부적인 재능을 보여 4세에 건반을 배우고 5세에 이미 작곡을 하기 시작했습니다. 교육열이 대단했던 그의 아버지는 6세부터 뮌헨을 시작으로 유럽 각주에 연주 여행을 보내고, 여러 작곡가와 교류하였으며 음악 공부를 시켰습니다. 여행에서 알게 된 J. 쇼베르트와 J.C.바흐에게 많은 영향을 받기도 하며 불과 8세의 나이에 바이올린 소나타 및 교향곡을 작곡하기도 했습니다. 그는 3번의 이탈리아 여행 동안 마르티니에게 음악 이론을 배우고, 이탈리아의 기악과 성악을 접하며 교향곡, 오페라 및 교회음악을 창작하는데 큰 자극이 되었습니다. 10대가 되자 오페라의 작곡 의뢰를 받아 밀라노에서 만든 오페라를 상연하기도 했습니다.
그 후에는 찰츠부르크에 살며 미사곡과 사교적인 곡을 주로 작곡하였으나 직무에 불만을 가지고 다른 곳의 취직을 위해 어머니와 만하임과 파리를 여행하였습니다. 이때에 만하임 악파를 접하며 <파리 교향곡>을 비롯하여 많은 곡을 작곡하였으나 만하임에서는 사랑을 파리에서는 어머니의 죽음을 겪는 등 희비가 교차되는 경험을 하게 됩니다.
여행에서 돌아와 궁정음악가로서의 활동을 이어갔지만 대주교와의 사이가 틀어지며 빈으로 주거지를 옮기게 됩니다. 이곳에서 부터 그의 인생 후반기가 시작됩니다. 자유인이 된 모차르트의 곡들에서는 자유로우면서도 인간 감정에 솔직한 표현들을 볼 수 있으며 그의 마지막 작품 <레퀴엠>에서 최고의 절정을 이룹니다. 오페라 작품 <후궁으로부터의 도주> 및 피아노 협주곡 등을 만들고, 1782년 콘스탄체와 결혼하게 됩니다. 빈에서 작곡했던 교향곡 및 현악 4중주곡은 하이든의 곡과 함께 고전주의의 전형적인 형식을 확립하게 됩니다.
그의 작품세계는 더욱더 무르익었지만 반면에 청중들이 원하는 기호에는 점점 멀어지게 됩니다. 이로 인하여 생활은 궁핍해지고, 빚도 쌓이게 되었습니다. <피가로의 결혼>이나 <돈 조반니> 등의 곡들은 이 시기에 나온 걸작이었지만 경제적으로는 크게 나아지지 않았고, 1789년에는 베를린 여행 중 프로이센의 국왕 프리드리히 빌헬름 2세로부터 작곡 의뢰를 받기도 하였습니다. 1784년에는 14세이던 베토벤을 만나 음악을 가리치기도 했지만 베토벤 어머니의 사망으로 불과 한 달간의 두 거장의 처음이자 마지막 만남은 끝이 났습니다.
오페라 <코시 판 투테>를 완성하고, <대관식 협주곡> 등의 연주회도 개최했지만 빚은 늘어만 가고, 1791년 오페라 <티투스 황제의 자비>를 상연하기 위해 프라하로 여행 갔을 때부터 건강이 악화되기 시작했습니다. 이후 대작 <마적>이 성공하였지만 <레퀴엠>을 미완성 상태로 남겨둔 채 같은 해 12월 세상을 떠나게 됩니다. 그의 묘는 빈 외곽의 성마르크스 묘지에 묻혔지만 현재는 무덤 위치를 알 수 없습니다.
35년이라는 짧은 생애였지만 어려서부터 창작을 했기에 모차르트는 성악, 기악 등 여러장르의 많은 작품을 남겼습니다. 그는 하이든과 함께 빈 고전파의 양식을 확립하였지만 당시의 각종 음악 양식을 흡수하고, 여기에 본인의 개성을 반영하였다는 점에서 하이든과는 확연히 다른 예술을 이룩하였습니다. 그의 빠른 창작 속도로 인해 800곡이 넘는 작품을 썼지만 그 때문인지 다른이들과 비슷한 멜로디로 표절이라는 오명을 쓰기도 했지만 대부분 원작자보다 월등히 훌륭했습니다. 누가 뭐라 해도 모차르트는 서양 음악사에서 가장 위대한 음악가임에는 틀림없는 사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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