낭만주의 음악가
쇼팽(Fryderyk Chopin, 1810~1849)
쇼팽이라는 이름만 들어도 가슴이 설렙니다. 그의 음악 선율은 이 세상에서 가장 세련되고 정감 있으며 어느 하나도 예사롭지 않습니다. 순수하고 아름다움 그의 음악을 듣고 있으면 마음이 깨끗해지면서 꿈을 꾸는 것처럼 고요해집니다. 그는 '피아노의 시인' 그 자체입니다.
쇼팽은 1810년 바르샤바에서 조금 떨어진 작은 마을 젤라조바볼라에서 1남 3녀 중 둘째로 태어났습니다. 그의 아버지는 프랑스 출신으로 폴란드의 귀족 자제들을 가르쳤고, 어머니는 폴란드인이었습니다. 쇼팽이 태어난 해 아버지가 바르샤바 고등학교에서 프랑스어를 가르치게 되면서 그의 가족은 작센 궁정으로 이사하였습니다. 누나가 피아노를 배워 쇼팽에게 놀이로 가르쳐 주며 그가 재능이 있음을 알아차리게 됩니다. 6세부터 음악가로부터 공식적인 교습을 받게 되었고, 7세 때 공개 콘서트를 열며 신동으로 명성을 얻을 수 있었습니다. 12세부터 음악이론과 작곡을 배우기 시작하였고, 이후 바르샤바 음악원에 들어갔으며 1825년에는 첫 작품 <론도>를 출판합니다.
그는 작곡에도 뛰어난 재능을 보였으며 희곡을 써서 공연을 올리기도 하였습니다. 1829년에 <피아노 협주곡 제2번>으로 빈에서 열린 연주회가 성공하며 유럽 여러 곳으로 연주 여행을 떠났습니다. 여러 나라를 여행해 본 그는 파리로 진출하게 되었지만 무명이었던 쇼팽이 바로 환영받지는 못했습니다. 그런 상황에서 이 천재를 알아본 사람은 프란츠 리스트였습니다. 그는 파리의 사교계와 음악계에 쇼팽을 적극적으로 소개하였고, 그의 노력으로 얼마 지나지 않아 쇼팽의 피아노 연주는 파리인들의 주목과 인정을 받으며 많은 독주회까지 열게 됩니다. 꿈과 같은 환상을 꾸게 하고, 섬세하면서도 정밀하며 풍성한 시의 정신을 통하여 예술을 느낄 수 있었던 그의 음악은 독자적인 본인만의 음악 세계를 펼치기 시작합니다.
10년 동안 지속되었던 작가 조르주 상드와의 만남은 유명한 이야기입니다. 쇼팽과 조르주 상드는 스페인의 마요르카에서 지내기고 하였는데 이때의 혹독했던 추위가 그의 건강과 폐병에 악영향을 끼치며 병세가 악화되게 됩니다. 그 곳에서 사랑의 기쁨을 누리며 아름다운 명곡을 남겼습니다. 하지만 상드와의 관계가 불륜으로 오해받기도 하고, 사교생활을 좋아하는 상드와의 성격 등으로 인하여 두 사람은 헤어지게 됩니다.
쇼팽의 음악은 서양 음악사에서 단연 독보적인 위치입니다. 그의 피아노곡들은 낭만주의의 소품으로 그 안에 완전히 새로운 내용을 포함하고 있습니다. 그 예시로 연습곡이나 전주곡, 스케르초 등에서 그 전의 형식들과는 전혀 다른 개념을 제시했으며 발라드라는 이전까지 없었던 장르를 만들기도 했습니다. 또한 존 필드가 창시했던 살롱음악인 녹턴을 깊이 있고, 세련된 장르로 발전시켰으며, 왈츠에 시적인 분위기를 입히는 등 그의 소품에는 어느 형식 할 것 없이 기존에 없었던 창의성을 나타내고 있습니다.
'음악은 소리를 가지고 사상과 감정을 표현하는 예술이다'라고 쇼팽은 말했습니다. 그에게 사상이나 감정은 개인의 것이 아니라 폴란드 민족의 한 사람이었던 것입니다. 그의 곡들은 개인적인 감정을 나타내고 있으며, 민족적인 정신을 느낄 수 있습니다. 그의 곡들은 부드러운 선율을 가진 단선율로 구성되어 있으며 선율이 자유롭게 움직이기 위해서 반주에 화음의 패턴을 줌으로써 움직임을 제한하려는 특징을 가지고 있습니다. 리듬이나 프레이징 또한 대단히 자유로운 구조이며 화음도 불협화음이나 반음계를 사용하며 대단히 혁신적인 경향을 보이고 있습니다. 이로 인하여 완전히 다른 느낌이 주면서 더욱 정밀하게 표현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의 대표곡으로는 <강아지 왈츠>, <혁명 연습곡>, <즉흥 환상곡>, <장송 행진곡> 등이 있습니다. 그 중에서도 <즉흥 환상곡>은 4곡의 즉흥곡 가운데 네 번째 곡으로 그의 사후에 발표되었으며 그의 작품 중에서도 최고로 인정받고 있는 곡입니다. 즉흥곡은 말 그대로 즉흥적으로 당시의 기분을 쓰는 곡이어서 정돈되지 않는 경우도 있지만 쇼팽의 즉흥곡은 자연스러우면서도 정리가 잘 된 형식을 가지고 있어 그의 천재성을 볼 수 있습니다.
그의 피아노 작품들에서는 악보에 없어도 연주에서 루바토를 사용하는 낭만적 특징을 볼 수 있습니다. 루바토는 자유로운 템포로 연주하라는 악상기호로 전체적인 템포는 바꾸지 않으면서 음표의 길이를 늘이거나 줄이며 연주하는 것입니다. 쇼팽의 음악에서는 이렇게 자유로운 표현을 하였고, 이것은 신비한 힘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는 피아노를 연주하며 페달을 사용하여 음색의 종류를 늘렸고, 악보에 기보 된 약박을 보다 강박에 가깝게 연주하여 피아노 연주법의 발전에 크게 기여하였습니다. 약 200곡에 가까운 그의 작품들은 거의 피아노를 위한 곡으로 단 몇 개의 곡만이 다른 악기를 위한 곡이었습니다.
하지만 이런 그의 예술가로써의 노력은 그의 병세를 더욱 악화시키게 했습니다. 잠깐동안 건강이 회복되면서 영국으로 떠난 연주 여행은 그를 과로하게 만들었고 결국 1849년 세상을 떠나게 되었습니다. 그의 유언에 따라 장례식에서는 모차르트의 <레퀴엠>이 연주되었고, 그의 유해는 파리의 페르라세즈 공동묘지에 묻혔습니다. 그의 심장은 누나에게 보내지며 바르샤바의 성 십자가 교회의 기념비 밑에 안치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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