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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래식 음악

클래식 음악의 역사 - 바로크 음악가(비발디, 스카를라티)

by rosssa 2025. 1. 29.

바로크 음악가

 

바로크음악가(비발디,스카를라티)

 

비발디(Antonio Vivaldi, 1678~1741)

4개의 바이올린 협주곡인 <사계>로 유명한 비발디는 이탈리아의 작곡가이자 바이올린 연주자 그리고 성직자입니다. 유전적으로 붉은색의 머리카락을 가지고 있어 '붉은 사제' 또는 '붉은 머리 사제'라는 별명이 있습니다. 바이올린 연주자였던 아버지로부터 어린 시절부터 바이올린을 배웠고, 25세 때 사제 서품을 받았지만 천식으로 인해 미사 집전에 어려움이 있었습니다.

1703년 베네치아의 여자 고아원이자 음악학교였던 피에타 학교의 바이올린 교사로 임명되어 37년간 근무하며 음악활동과 작곡을 하였습니다. 피에타 학교는 원래도 규모가 크고, 높은 교육수준의 음악학교였지만 비발디의 노력까지 더해지며 음악 수준이 비약적으로 향상되었습니다. 그로 인해 피에타 합창단과 연주자들의 명성이 높아지며 정기공연 및 이탈리아 순회공연 등을 하게 되었고, 비발디는 이들을 위하여 수많은 곡을 작곡하며 작곡실력도 나날이 발전하였습니다. 작곡가로 인정받은 그는 약 40여 곡의 오페라를 작곡하였고, 이를 상연하기 위하여 연주 여행을 많이 다녔습니다. 1741년 오스트리아 빈으로 간 비발디는 지병이었던 천식이 악화되어 객사하여 빈민묘지에 묻혔다고 하지만 이장되는 과정에 분실되며 현재는 행방을 알 수 없습니다.

'비발디' 하면 <사계>가 떠오르듯이 그의 대표 작품으로는 바이올린 협주곡 <사계>가 있습니다. 이 외에도 신포니아 23곡, 합주 협주곡 <조화의 영감> 및 약 500곡의 기악작품, 오라토리오, 칸타타등을 작곡하였습니다. 비발디의 협주곡은 대게 빠르게-느리게-빠르게의 3악장으로 구성되어 있고, 가끔 느린 서곡이 붙은 것도 있습니다. 이것은 단순한 형식이지만 자세히 들어보면 각 곡마다 변화와 표현이 놀라울 만큼 풍부하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의 음악은 전주나 독주가 반복적으로 교대되고, 대조를 형성하며 악상을 힘차게 전개해 나갑니다.

비발디의 음악은 풍부한 감정을 가지고 있으며 노래하듯 아름다운 선율과 쾌할하고 명쾌한 리듬이 특징입니다. 구김살 없이 밝은 음악은 마음을 편안하게 하여 당시 파티 같은 곳에서 큰 인기를 끌었습니다. 하지만 그의 사망 후 비발디라는 이름은 잊혔고, 200여 년이 지난 후에야 바흐에 의하여 편곡된 비발디의 곡이 발굴되며 재조명되기 시작하였습니다. 그가 확립한 기악곡 양식(콘체르토 양식)은 혁신적인 방법으로 음악성을 지키면서도 빠르게 작곡을 완성할 수 있어 기악곡 발전에 큰 영향을 미쳤습니다. 또한 선배음악가들이 확립한 합주협주곡 양식(콘체르토 그로소)을 자신만의 합주협주곡 양식으로 발전시키며 후세에 많은 영향을 주었습니다.

스카를라티(Domenico Scarlatti, 1685~1757)

바흐가는 200여 년 동안 50명 이상의 음악가를 배출하며 역사상 음악 가문으로 가장 명성이 높은 곳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에는 못 미치지만 다른 나라에도 비슷한 가계가 있으니 영국의 퍼셀가, 프랑스의 쿠프랭가, 이탈리아의 스카를라티가 등입니다.

스카를라티는 오페라와 오라토리오 작곡가였던 알렉산드로 스카를라티의 아들로 작곡가이자 하프시코드 연주자입니다. 그는 아버지를 비롯하여 작곡가, 음악가, 교사들에게 음악교육을 받았으며 1701년 15세라는 어린 나이에 나폴리 궁정 예배당 전속 오르간 연주자 겸 작곡가로 취임하였습니다. 1703년에는 그의 첫 오페라 <오타비아>에 이어 <이레네>까지 발표하며 오페라 작곡가로 알려지기 시작하였습니다. 이후 베네치아로 유학을 가며 당시 오르간과 쳄발로 연주 라이벌이던 헨델과 교재 하기도 하였습니다.

1720년 리스본의 호안 5세의 궁정 악장으로 임명되면서 왕녀 마리아 바르바라를 만나 그녀가 스페인 왕자와 결혼한 이후에도 그녀의 밑에서 평생동안 음악활동을 하였습니다. 때문에 그의 600곡에 달하는 하프시코드곡 대부분은 그녀를 위해 작곡했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의 음악 활동은 크게 두 시기로 나뉘어 집니다. 전기는 1728년까지로 이 시기의 작품은 아버지나 이탈리아 작곡가의 영향을 받아 교회음악과 오페라 및 칸타타가 주를 이룹니다. 후기는 1729년 결혼한 왕녀를 따라 스페인으로 이동한 이후부터로 이 시기에는 독창적인 쳄발로곡을 많이 남겼습니다. 그중에서도 쳄발로 소나타는 피아노 음악의 전성기 이전부터 피아노 기법을 사용한 것으로 이는 현대 작곡가에 이르기까지 그의 영향이 대단히 크다고 할 수 있습니다.